휘핑크림과 새우와 버섯을 듬뿍 넣은 크림 스파게티! 느끼함이 그리워서 시작하지만, 김치로 마무리 하지 않으면 안되는 크림 스파게티.
크림스파게티에 쓰고 남은 휘핑크림을 얼른 써야 되겠는데, 크림 스파게티가 먹고싶어지려면 시일이 좀 지나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날짜 지나기 전에 휘핑크림을 쓸 요량으로 생크림 만들기에 도전을 했습니다. 휘핑크림을 넣고 저을 작은 양푼 밑에 깔을 얼음을 얼려서 준비해 놓고 그 얼음이 빨리 녹지 않게 하려고 아이스 팩을 얼음이 들은 큰 양푼 밑에 깔았습니다. 설탕을 곱게 갈아서 쓰면 좋다고 해서 설탕도 갈았습니다. 휘핑크림을 담을 양푼은 냉장고에 넣었다 꺼냈고 휘핑크림도 냉동실에 5분 정도 넣었다 꺼냈습니다. 처음 해보는 생크림 만들기에 기대반 걱정반으로 젓기 시작했습니다. 핸드믹서에 달린 거품기를 사용한거라 팔이 아프지는 않았는데, 뜻밖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바로 휘핑하는 동안 크림이 사방으로 튀는 겁니다. 팥죽 쑬 때 끓는 팥죽이 튀듯 작은 크림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생크림 만드는 법 어디에도 사방으로 생크림이 튈 수 있다는 경고는 없었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난감했습니다. 그렇다고 점점 액체에서 걸죽한 크림의 형태로 바뀌는 걸 보고 크림 만들기를 중단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방으로 튀는 생크림은 주로 설겆이해서 엎어둔 그릇들로 튀었습니다. 생크림이 되어가는 건 좋지만 저 그릇들을 다시 씻어야 할 걸 생각하니 내가 괜한 짓을 하고있나 후회도 좀 되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와서 상황을 보더니 말없이 빨래집게 두 개를 들고 왔습니다. 그러더니 그릇놓는 선반에 커튼을 쳐주고 가는 겁니다. 빨간 행주 양 끝을 빨래집게로 선반에 고정 시킨 아들의 커튼!
물론 그 커튼은 크기가 작아 선반에 엎어둔 그릇에 생크림이 튀는 걸 다 막아주진 못했습니다.그러나 나는 사방으로 튄 생크림을 닦아내는 일에 짜증을 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마음에 아들의 빨간 커튼이 드리워졌기 때문입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생크림은 달콤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졌고, 생크림보다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들에 대한 추억하나도 만들어 졌습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우리 아들의 힘입니다.
언제부턴가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클래식과 우리 전통음악을 하루 종일 방송하는 클래식 전문방송이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민심에 따라 골고루 적당하게 선곡된 음악을 광고방송 없이 24시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 그런데 테이프나 시디로 듣는 것과는 다르게 전파를 타고 흐르는 방송이다 보니 늘 같은 음질로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안테나 부러지고 없는 아날로그 라디오는 주파수 맞추는 게 정말 일이다.
원래 있던 자바라식 안테나는 아들이나 딸 둘 중 누군가가 살짝 부러뜨린 걸 (부러뜨림 자체를 원망하진 않는다. 아이들 손에 남아날 만큼 무쇠팔뚝 같진 않았으니까) 테이프로 붙여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뭔 맘으로 아주 똑 꺾어버렸다. 그런데 그 어설프게 건들건들 붙어있던 안테나를 아예 떼서 없애버리자 소리가 찌직거려 도저히 방송을 들을 수가 없게 됐다. 두 조각 난 안테나를 의료용 테이프로 고정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똑 꺾인 안테나가 제 기능을 하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사를 해서 라디오 놓는 자리가 바뀌자 더 이상 방송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찌직거렸다. 아쉬운 대로 손에 잡히는 열쇠를 안테나 자리에 얹어놓고 주파수를 맞추면 그럭저럭 들을 수 있었지만, 늘 아쉽고 불만스러웠다.
라디오 안테나 자리에 열쇠 하나를 끼워놓고 주파수를 맞춰보려고 애쓰던 어느 날, 아들에게 하소연 하듯 안테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쇠를 이리 저리 끼워보던 아들이 공구서랍에서 긴 줄을 하나 갖고 오더니 이걸 안테나로 써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 선이 무엇에 쓰던 선인지 모르지만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라디오를 사는 돈 보단 싸게 들 테니 말이다. 아들이 가위며 니퍼를 들고 선을 과감히 자르고 쭉쭉 껍질을 벗기고 하더니 알록달록하고 가는 선들이 서로 배배 꼬여있는 긴 줄을 들고 왔다. 그리곤 그 줄을 부러진 안테나 끝에 감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짧은 안테나에 얌전히 붙어있을 만큼 노긋노긋한 선이 아니었다. 색색의 여덟 갈래로 갈라진 그 선은 뻗대는 머슴아이 심술자락마냥 사방으로 뻗치며 풀어져버렸다. 아들이 안되겠는지 공구서랍에서 뭔가를 또 가져왔다. 그것은 마치 빨래집게처럼 생겼고 손으로 누르는 부분에 둥그렇게 구멍이 나 있는데, 아들이 그 구멍에 줄을 끼워 홀쳐 묶었다. 그리고 긴 줄이 매인 그 빨래집게 같은 것을 안테나 끝에 대는 순간.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거의 완벽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
아! 아들의 안테나다.
엄마를 위해 만든 아들의 안테나!
자세히 보니 그 빨래집게 같은 것은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때 쓰는 집게다. 자전거 바퀴에 있는 바람 들어가는 구멍과 펌프에 있는 바람 나오는 가는 관을 연결시킬 때 쓰는 집게. 그러나 라디오 안테나 역할을 하고 있는 여덟 가닥의 전선은 아직도 무엇에 쓰던 물건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아들의 눈썰미와 재치와 끈기를 느끼게 해주는 용솟음치는 사랑의 안테나일 뿐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솔바람 2014/04/10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라디오가 얼마나 한다고 저런 궁상을... 그러나 시디를 들을 수 있었고, 테이프를 들을 수 있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그 스테레오 라디오는 보통 라디오가 아니라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친구가 미국여행에서 사와서 친구의 아들을 키우는 동안 시디로 음악을 들려줬던 라디오다. 친구의 아들이 다 커서 더 이상 식탁에 올려놓고 음악를 틀어 줄 일이 없게 되었을 때 우리 집에 온 라디오다. 친구네 집에서 올 때는 110볼트용이라 나도 한동안은 변압기를 놓고 썼던 라디오. 시디 넣는 문이 고장나서 자동으로 열리지만, 그래도 아직 쓸만하다고 물려 준 친구의 진심을 알기에 동네 수리점에서 시디 넣는 문을 수리했고, 더불어 변압기 사용이 번거로워 비용을 들여 220볼트로 바꾸기도 했다. 한번은 테이프가 안되서 수리를 했는데, 작은 레고 조각이 기계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볼륨 조절도 안되서 한밤중엔 들을 수도 없을 만큼 큰소리가 나오는 라디오지만, 친구집에서 산 세월과 내 집에서 산 세월을 합하면 족히 20년은 되었을 라디오라 함부로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라디오를 수리하라고 맡기고 수리가 끝나면 찾으러 가고 했던 그 모든 과정이 내 삶엔 추억이고 아이들 삶엔 교육이 되었을 것이니, 내 집에 그 라디오가 있는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다. 오늘도 나는 내 아들의 안테나가 달린 그 라디오를 듣고 있다. 불행히도 시디플레이어가 아주 고장이 나서 고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해서 안고치고 있다. 그래도 아직 테이프는 들을 수 있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들의 손놀림이 더 정교해지는 어느날엔 어쩌면 조절되지 않는 볼륨을 고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미래를 꿈꾸는 엄마는 행복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일단 궁금한 건 못 배기는 성질인 지승이.
호기심이 많은 만큼 아는 것을 반복 하는 건 너무나 싫어하기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싫은 지승이. 시험시간에 계산기를 맘대로 쓰려면 적어도 대학 이상은 돼야 하는데, 초등학생인 지금 공책 가득 써야하는 사칙연산의 혼합계산이 얼마나 지루할지 상상이 갑니다. 그래도 나머지 공부는 하기 싫은지 혼합연산을 연습하고 갔습니다. 그것도 분수와 소수가 섞여있는 혼합연산이니 오죽 귀찮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과정도 다 무난할 만큼은 거쳐야 하는 것이니 해야지요.
5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지승이가 왜 피아노하고 바이올린을 배워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중 피아노는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것이 의무였는데, 아마 많이 싫어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너무 진지하게 말하지 않고, 그렇다고 영 거짓도 아닌 말로 얼럴뚱땅 넘기려고 장난스럽게 대답했습니다.
“ 지승아, 니가 커서 피아노로 멋진 곡을 차악 치고, 바이올린을 멋지게 켜면 얼마나 멋있겠니. 그럼 너 여자들한테 인기 짱이다! 피아노 치는 남자. 얼마나 멋진데!”
여기까지 하고 아들을 보니 안되겠다 싶어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 중에는 취미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많데. 아인슈타인도 바이올린을 켰다나? 피아노를 쳤다나.......”
“겨우 그거야? 겨우 그런 거 때문에 나한테 피아노를 배우라는 거야?”
아들은 엄마의 대답을 기막혀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난 위인이 안될거라구!”
매일매일 20분씩 피아노를 쳐야 한다면 아들은 위인이 되는 것도 싫은 겁니다.
당황하고 미안했습니다. 악기는 어느 정도 기능을 갖추어야 즐길 수 있다는 믿음에 기능을 익히라고 시킨 것인데, 아들은 너무도 지겨웠던 겁니다. ‘피아노 20분’ 이란 말 자체가.
그런 아들을 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맞아. 우리 역사의 위인들은 얼마나 큰 고초를 겪으며 살았는가. 그래 아들아, 넌 큰 고초를 겪는 위인이 되지 말고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이 되어라.’
그 이후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피아노 20분’이란 숙제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씩 하는 피아노 교습은 계속 했습니다. 학교 방과 후 바이올린도 두 시간 연속 수업 받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해서 한 시간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아노도 그리 지겨워하지 않고 바이올린도 두 시간을 다 채우고 오는 겁니다. 바이올린 끝나면 나눠주시라고 선생님께 매주 간식을 보냈습니다. 모닝빵으로 미니 햄버거도 만들어 보내고, 김밥도 보내고 겨울엔 찐빵도 따끈따끈하게 쪄서 보내고, 특식으로 막 구워낸 꿀호떡도 바이올린 끝나는 시간에 맞춰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간식 먹는 재미에 수업을 다 하고 오는 겁니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간식 먹는 재미를 톡톡히 보았구요. 그렇게 5학년 2학기를 보내더니 6학년이 되어선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싫다는 말 안하고 잘 다닙니다. 요즘엔 피아노로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재미가 붙어 스스로 곡을 외우고 반복 연습도 합니다. 바이올린은 강사선생님께서 직접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십니다. 그 간식 받는 재미에 또 열심히 다닙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엄마와의 갈등을 끝내고 지금은 스스로 연주의 재미를 아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한 고비를 넘긴거지요. 그렇다고 연주가 객관적으로 훌륭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앞으로 또 비슷비슷한 고비를 넘기며 지승의 인생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친구가 되고 희망이 되고 여유가 되고 나아가 예술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고비!
그건 넘기는 겁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 아들은 엄마를 '보기만 해도 줄줄 녹아내리는 버터처럼 느끼한 엄마'라고 합니다. 버터처럼 느끼한 엄마의 아들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