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에 해당되는 글 139건

  1. 2011/03/10 열흘과 열하룻날 이야기
  2. 2011/03/04 이레 째 이야기
  3. 2011/02/11 닷새 째 이야기
 

지윤 지승의 이모 중에 그림 쓱쓱 잘 그리는 이모가 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 나름대로 두 이모의 특징을 들어 별명이 다릅니다. 꿈이 만화가였던 이모가 그림 그리는 걸 보더니 ‘안 보고 쓱쓱 잘 그리는 이모’라 하고, 공책 표지 만화를 보고 그대로 따라 그려주는 이모는 ‘그림 보고 잘 그리는 이모’라 합니다.

애들한테 그림 잘 그리는 이모가 오늘 오시기로 했다고 했더니 묻습니다. ‘쓱쓱 잘그리는 이모요, 보고 잘 그리는 이모요?’하고.

‘보고 잘 그리는 이모’가 온다고 말해주고 친구 맞을 준비를 합니다. 삭힌 고추, 묵나물, 고사리나물, 마늘쫑 장아찌, 그런 반찬들을 챙겨보며 추억도 같이 챙겨보았습니다. 당연 멀리서 오는 벗을 맞음이 그 아니 기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 줄 것을 못 사왔다고 굳이 단양 읍내를 나가자고 해서 드라이브삼아 나섰습니다. 읍내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샀습니다. 아이들은 이모가 사주는 과자를 받아들고 행복합니다. 엄마는 안 사주는 종류의 과자를 이모가 사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탄산이 들어간 청량음료 및 합성착향료, 합성착색소  들어간 음식물 반입 금지라고 하리하우스 공지란에 명기해 놓았기 때문에 과자를 사 올 때 원료를 확인하고 사 옵니다. 아님 미리 전화를 해서 어떤 과자가 좋냐고 물으면 그냥 합성향료 안 들은 씨리얼 하고 우유를 사다 달라고 합니다.  대부분 그 주문을 따라 주셔서 모르고 갖고 온 과자는 차에서 꺼내지 않는 성의를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은 부적합 한 과자들이 반입되기도 하는 데, 바로 이모가 골라 주어서 이미 아이들 손에서 다시 회수하기 어려운 ‘프링글스’였습니다.

프링글스, 참 맛있는 과자입니다. 참 비싸기도 하구요. 이모가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골라준 것인데다 그래 그게 어떤 맛인지나 알아봐라 하는 생각에 허락했습니다. 실은 내가 좋아하는 과자이기도 합니다. ㅋ ㅋ  생전 처음 먹어보는 프링글스 치즈맛과 바베큐 맛에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습니다. 아빠를 좋아하는 지윤이는 아빠를 드리겠다고 몇 개 남겨 놓았고 지승인 다 먹었습니다. 청소를 하다가 치즈맛 프링글스 통이 비었기에 재활용통에 넣었더니 지승이 다시 꺼내서 모셔둡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냄새라도 아빠 맡으시라고 보관한다는 겁니다. 프링글스가 감자튀김이니 신선도만 유지된다면 크게 금지할 품목은 아닙니다. 그런데 치즈맛과 바비큐맛을 내는 합성착향료가 문제가 되어 금지한 것인데, 오히려 아빠를 위해 냄새를 남겨두기엔 합성향료가 유리했습니다. 왜냐하면 냄새가 진해서 과자 뚜껑을 열면 고소한 치즈향과 칼칼한 바비큐향이 짙게 풍겨나기 때문입니다. 아빠를 위해 냄새를 남겨두겠다는 아이들을 보고 ‘그림 보고 잘 그리는 이모’는 또다시 단양 읍내를 나갔습니다. 프링글스를 사러.

이모와 난로에 불 때서 고기 구워먹고 노래 불러 드리고 하면서 재미있는 1박 2일을 보냈습니다. 이모는 그림을 그려 주시고 아이들은 모사란 무엇인지 자연스레 배우고. 뭐든 배움이 없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피아노를 찾아서 ...노래를 찾아서...

반가운 손님이 오기로 한 날입니다. 한이 오빠와 이모가 오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나 올 손님인데 우린 수요일부터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낼 하루만 더 있으면 금요일엔 한이 오빠가 온다는 낙으로 수요일을 보내고 목요일을 맞았습니다. 오늘만 지나면 낼은 한이 오빠네가 온다  하며 목요일을 보냈습니다. 아마 ‘어린왕자는 하리에 있는 우리보다 덜 심심했나 봅니다. 어린왕자는 친구를 약속시간 두 시간 전부터 기다리며 행복했지만, 지윤 지승은 이틀 기다리기를 두 시간 기다리듯 했습니다.

한이는 특별히 청한 손님입니다. 와서 노래 한곡 들려달라고. 얼마 전 중학교 1학년인 한이가 성악으로 음악 영재학교에 지원했다가 선발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가능성을 찾아 키우려는 미술대회에서 여백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네로를 뽑지 않았던  심사위원들처럼, 아마도 성악에 영재 가능성을 지닌 아이가 아닌 이미 가꾸어진 영재를 뽑았나보다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시험 전 대 여섯 번의 개인지도만 받고 도전했던 한이의 가치를 몰라준 것이 내내 안타가웠습니다. 약간 위축돼 있을지도 모를 한이 기도 살려줄 겸 하리로 오라고 초대한 겁니다.

한 이태 전인가 한여름 밤 작은학교 마당에 울려 퍼지던 아름다운 목소리를 기억하기에 한이의 노래를 꼭 듣고 싶었습니다. 지윤 지승에게 또래(?)가 부르는 성악곡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서울 집에서는 하루 30분의 피아노 치기 숙제를 지겨워하더니 피아노가 없는 하리에서는 피아노 치는 시늉을 잘 합니다. 손으로 허공을 두드리고 입으로 계이름을 외며...

하리에 온 지 이레 째 되는 날인데 아이들이 정말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지윤 지승과  좀 낭만적인 길을 나섰습니다.

피아노를 찾아서...

적성면사무소에서 한 때 동네 아이들에게 피아노는 가르치시는 봉사자가 계셨단 이야기를 들은 듯 했습니다. 그래서 면사무소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집을 나설 땐 눈발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 했습니다. 

피아노를 찾아서...

피아노를 찾아 가는 기분이 피아노를 듣는 것 만큼이나 즐거웠습니다. 너무나 피아노가 피고 싶어서 ‘저기 있는 피아노를 쳐봐도 될까요?’하고 말하는 순간도 참 동화적이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에 더 행복한 길.

피아노를 찾아서...

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오래 외롭던 피아노 뚜껑을 열고 한두 건반 두드려 보는 아이들. 눈을 반짝이며 의자를 바짝 끌어 앉아 연주를 하면 침침하고 적막하던 시골 면사무소의 놀이방에 ‘딩동댕동 댕댕동’ 하는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이런 상상을 하며 눈발 날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피아노를 찾아서...

그런데 아쉽게도 적성면사무소 놀이방으로 쓰였던 곳에 피아노는 없었습니다. 피아노가 없어서 아쉬워하며 돌아왔습니다. 피아노를 찾아 나섰던 그 길을. 하지만 아이들이 피아노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게 많은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에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것임을 알기에 지윤 지승의 삶이 아름다울 거란 믿음이 자라는 날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중에 피아노를 사면 작은 학교 어디다 둘까 의논하며 걸었습니다.

성악은 지윤과 지승의 삶에 또 하나의 사랑입니다. 아직은 호흡도 제대로 못 끝낸 지승이지만 성악수업으로 ‘노래부르기’를 즐겨하게 되었으니 사랑의 첫 발은 뗀 셈입니다. 그런 지윤 지승에게 꿈의 대상이 생기면 더 분발하지 않을까 싶어 한이의 노래를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파리나무십자가 합창단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맑고 고운 소리를 곁에서 직접 듣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지윤 지승 둘이서 난로에 불을 피워 본 경험이 있는데다 한이도 있으니 불을 피워보라고 맘 놓고 내려 보냈습니다. 난롯불에 고기 구워먹을 채비를 해서 내려갔습니다. 위판이 넓은 난로 위에 호일을 깔고 돼지고기를 얹어서 구워먹었습니다. 고기 옆에 잘 익은 김장김치를 얹어서 구웠습니다.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곤 자연스레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지윤, 지승이 사운드 어브 뮤직에서 배운 도레미 송을 원어로 부르고, 한이를 시켰는데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불렀습니다. ‘탈 때로 다 타시오 타다 마진 부디 마오..’ 그리고 한이를  시켰는데 한참을 빼다가 뺀다고 엄마한테 혼나다가 그러다가 불렀습니다. ‘옴 브라 마이프....’

‘와~~~’

노래를 잘한다, 가수해도 되겠다, 뭐 그런 칭찬은 해 본 적이 있지만,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다는 칭찬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이의 노랫소리는 소리 그 자체가 아름다웠습니다. 복덩이 하나를 타고난 한이입니다.

하리하우스 1층은 공명이 좋은 구조입니다. 나처럼 음을 잘 못 다스리는 사람의 노래도 그럴듯하게 울려주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부르는 한이의 노래는 너무 멋져보였습니다. 아름다워서 훗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분위기에서 한이의 노래를 또 청해 들었었는데, 듣고 나서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한아, 이모한테 하리하우스가 있어서 참 행복하단 생각을 했어. 여기가 아님 어떻게 이런 분위기에서 너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겠니. 이모가 파리나무십자가 노래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그것보다 더 아름다웠어. 정말 잘했어.“

한이를 구슬려서 오랜만에 ‘보리수’도 들었습니다. 나도 좋아하는 노래인지라 같이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이가 음악시간에 배웠다는데 내가 학창시절 배울 때와 번역이 약간 달랐습니다. 나는 ‘가지엔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라고 알고 있는데, 한이는 ‘가지엔 사랑의 말 새기어 놓고서’라고 불렀습니다. ‘사랑’이든 ‘희망’이든 새기어 놀 만한 단어이니 무에 상관이겠습니까. 한이 덕에 잊었던 노래 하나 찾아서 기뻤습니다. 며칠을 기다려 온 손님은 1박2일 머물다 돌아갔습니다. 보리수 음율하나 떨구어 놓고서.

하리 작은 학교에 피아노가 생기면 꼭 한이를 초대해야겠습니다. 반주는 지윤이나 지승이나 하라 하고 노래는 한이한테 하라 하고, 그리고 우린 듣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은 꼭 엄마를 찾아 가야지 하고 별러서 하리 농협 앞에서 12시 33분 버스를 탔습니다.

올거라 믿고  기다리시는 데 못 가면 안 될 것 같아 꼭 간다는 약속은 안 드리고 갈 수도 있다는 운만 띠워놓았습니다. 친정 엄마를 방문하는 건 늘 이렇습니다. '갈 수도 있어요' 오늘 꼭 간다고 하면 외할아버지께서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오실 것이기 때문에 걸어서 가려는 계획도 어긋날 수 있어서 그냥 상황 봐서 가겠다고 말씀드려놓은 것입니다. 일부러 고생 좀 해보라고 돈 내고 해병대 교육도 보내는 데 시골길 한 시간 남짓 걷는 거야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여 걸어갈 계획을 하는 것인데 외할머니는 추운데 아이들 고생한다고 걱정을 하십니다. 버스 차비를 내려고 잔돈을 준비하느라 농협에서 팥영양갱을 하나 샀습니다. 곧은터 쯤에서 기운 떨어질 때 먹으면 될 것입니다.

버스로 12분쯤 걸려 기동 정류소에 내렸습니다. 이년 전 여름 거기서부터 솔고개까지 걸어가는데 놀며 놀며 컵라면 끓여 먹으며 갈 때는  두 시간 정도 걸렸었습니다. 오늘은 추워서 걸음이 빠를 것이니 그것 보단 빨리 갈 수 있을 겁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이동형 구르마에 짐을 매었습니다. 그리고 구르마를  지승이가 끌었습니다. 밀고 끌고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뒤쳐져 오면서도 힘들다는 애길 안합니다. 처음엔  엄마가 끌고 간다고 달라고 하여도 싫다고 하더니 한 25분 쯤 가서는 엄마에게 달랬더니 짐을 넘겨줍니다. 힘들었나보구나 생각하고 짐을 끌고 가는데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지승이가 힘들었겠구나 했습니다.
한 10분 걷다가 지윤이에게 짐을 넘겼습니다. 무거운 건 나눠들 줄 알아야 해서 지윤이에겐 곧은터 서낭당까지 의무적으로 끌고 가야한다고 책임을 주었습니다. 곧은터까지 가면 영양갱을 먹는다는 생각에 열심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날이 좋을 땐 서낭당 당산나무 그늘아래서 컵라면을 먹기도 하지만 지금은 영양갱 하나만 나눠먹으며 곧장 외갓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컵라면을 먹는 게 낭만이라 하지만 안먹을 수록 좋기 때문에 일부러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외갓집에 가서 눈썰매를 탈 생각에 빨리 가고 싶어했습니다.
곧은터에서 한 20분 걸어 앞저넘 언덕에  오르면 솔고개 마을이 한눈에 보입니다. 학강산 아래 외갓집이 따뜻하게 서있습니다. 거기서부턴 하나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솔고개는 다 외갓집 같기 때문입니다. 두시가 거의 다 되어 외갓집에서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바로 눈썰매를 타러 나갔습니다. 지난번에 눈썰매 타고 바지가 젖어서 내복바람으로 집에 갔던 걸 생각해서 스키바지에 여벌옷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지난 번 탔던 밭이 아니고 다른 밭에서 탔는데, 준비가 완벽한 만큼 오래 타라고 했는데 얼마 안타고 들어와 버립니다. 알고 보니 눈 속에 뭐 엉덩이를 찌를 만한 것들이 있는데다 지난번엔 아빠가 같이 있어줬는데 이번엔 저희끼리 타니 재미가 덜 했나 봅니다.

자고 가라는 걸 가야 한다고 했더니 갈 거면 날 밝을 때 가라고 재촉을 하십니다. 생수통에 물을 받아서 외삼촌 차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엔 기동에서 하리까지 과방재를 넘어 걸어볼 참입니다. 과방재라고도 하고 과거재라고도 하는데 덥지도 춥지도 않을 때를 골라 넘어보려 합니다. 차로 몇 분이면 될 거리를 몇 시간을  들여 걸어보는 경험이 아이들 삶에 어떤 의미로 살아날지 모르지만, 더 크면 국토횡단 같은 계획을 세울 밑거름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