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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지를 끌고

 하리 하우스 방부목 데크에 오일스테인을 칠하고 있는데, 딸이 와서 조릅니다.

 “엄마, 책 하나만 읽어 줄 수 있어?”
 “엄마 지금 바쁘잖아.”
 “엄마, 딱 하나만 읽어 주고 하면 되잖아요.”

 저희끼리 한참을 잘 놀더니 일하는 엄마에게 자꾸 조릅니다.

 사실 이럴 땐 눈 딱 감고 책 읽어 줘야 한다는 얘기를 강남엄마 얘긴지 목동 엄마 특목고 보낸 얘긴 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고 하면 설거지 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벗고 읽어 줬단 이야기였습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라면 참 좋은 얘기긴 한데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엄마 설거지 다 하고 읽어 줄게.”
 “조금만 기다려, 빨래 요것만 다하고 읽어 줄게.”

 심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지금 일하는 거 안보여!” (소리 꽥!)

 그냥 보내려다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래, 그동안 잘 놀았으니까 한 권만 읽어 줄게.”

 선심 쓰듯 이야기 합니다. 엄마를 뒤에 달고 가는 딸의 발걸음이 너무 가볍습니다.

 딸과 함께 돗자리를 깔아 논 은행나무 밑으로 갑니다. 딸이 동화 책 서너 권을 펼쳐 놓고 읽고 싶은 것 하나를 고르라고 합니다. <달구지를 끌고> -비룡소-를 골랐더니 딸도 그 책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딸과 함께 낙엽이 흩날리는 10월의 한 농가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얼룩소에 달구지를 매어 놓고 미소 짓는 한 농부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농부는 이제 달구지에 차곡차곡 물건을 싣기 시작합니다.

10월이 되자, 농부는 소를 달구지에 매었어.

4월에 농부가 깎아 두었던 양털 한 자루

농부의 아내가 베틀로 짠 숄.
4월에 농부가 깎은 양틀을 물레에 자아 털실을 만들고,
그것을 베틀에 돌려서 짠 숄이지.

농부의 아내가 자아낸 털실을 가지고 농부의 딸이 짠 벙어리 장갑 다섯 켤레.

농부의 아들이 부엌칼로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
. . . . . .  . .
. . . . . . . .

달구지가 가득 차자
농부는 아내와 아들 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어.

그리고 농부는 소를 몰고 열흘 동안 걸어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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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항구 도시 장터에 동착한 농부는 달구지 안에 실은 모든 것과 달구지와 달구지를 끌고 갔던 소와 소의 멍에와 고삐까지 팔았습니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농부는 가족을 위한 선물을 샀습니다. 무쇠 솥과 수예바늘과 주머니 칼과 앵두맛 박하 사탕 2파운드를 샀습니다.  그리고 농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럴 때 농부의 마음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더니 행복할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딸과 나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농부처럼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10월이 되면 노랗게 낙엽을 떨굴 은행나무 아래 앉아 있어서 더 행복했습니다.

농부의 딸은 수예바늘을 받아 수를 놓기 시작했고,

농부의 아들은 주머니칼을 받아 나무를 깎기 시작했어.

농부의 아내는 새로 산 솥에다 저녁밥을 지었고,

가족 모두는 앵두맛 박하 사탕을 먹었어.

그리고 농부의 가족은 겨우내 각자의 일을 차분히 했습니다.
3월이 되자, 단풍나무 설탕을 만들었고 4월이 되자, 양털을 깎았고 5월이 되자 감자와 순무와 양배추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6월과 7,8월을 보내고 9월을 지나 10월이 되면 농부는 또 소를 달구지에 맬 것입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세월은 농부 가족이 먹은 앵두맛 박하사탕처럼 추억의 향기를 남기고 인생 속으로 스며들 겁니다. 이 아름다운 흘러감과 반복을 일곱 살 난 딸이 다 느끼랴마는 나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 우리도 하리 하우스에서 작은 학교를 가꾸며 한 해를 흘려  보내고 또 한 해를 받아들이면서 순리대로 살자꾸나. 커다란  은행나무가 투박한 껍질 속에서 여린 잎을 만들고 열매를 영글게 하고 가을이 되면 노란 잎으로 겨울 잠자리를 마련하듯 우리도 세월을 아름답게 흘려  보내자꾸나 ... ...‘

그림동화 <달구지를 끌고>에는 대화가 한 문장도 없습니다. 그저 서사 (敍事)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도 지루하지 않게 읽힐 수 있는 건 리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달구지를 끌고>의 작가 로날드 홀은 시인입니다. 시인이 쓴 동화에는 저도 모르게 잔잔한 음악이 흐릅니다. 시의 운율 (韻律). 번역체 문장이지만 반복과 대구가 만들어내는 운율이 자연스레 흘러나옵니다.

 이 책에서 글이 다 말해 줄 수 없는 부분은 그림작가 바바라 쿠니가 완벽하게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림을 위해 글이 씌어졌는지 글을 위해 그림이 그려졌는지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이 책에서 글과 그림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책이 갖고 있는 조화의 미덕에 감동받게 됩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찬양. 그 찬양의 한 구절을 하리하우스에서 만들 계획으로 열심히 붓질을 하고 있습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 데크에 오일스테인을 다 칠해야 할텐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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