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독서의 관계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자간다. 한참 재미있다 싶으면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고, 어쩌다 혼자 있을 땐  점심을 건너뛰고 책을 잡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된다.

 내 책을 읽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에게 DVD 보라하고 책을 붙들어 보지만 효율적으로 읽을 수는 없다. 애들이 계속 귀찮게 (?) 굴기 때문이다.

 어떨 땐 애들 재워놓고 책 봐야지 하고 자리에 눕는데, 그만 아이들 동화책 읽어주다 내가 먼저 잠들어 눈을 떠보면 새벽이 다 돼 있어 황당하기가 그지없는 날이 더 많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다보니 ‘도전 , 초등 베스트 문고 50’을 달성하는 데 석 달이 걸렸다. 하루 한 권 씩 뚝딱 뚝딱 읽으면 두 달이면 넉넉하리라 계획했는데  계획보다 한 달이 더 걸린 셈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읽은 시공주니어 베스트 문고 덕분에 아이들과 나눌 대화의 폭이 넓어진 것을 생각하니 반지의 제왕을 뒤로 미루고 동화책만 붙들고 지낸 석달이 결코 아깝지 않다. 함께 공부한 아이들 중 가장 많이 읽은 아이가 40권 가까이 읽었고 적게 읽은 아이가 10권 가까이 읽었다.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이들 기질의 차이에서 온 것이다. 40권을 읽은 아이는 신명이 나서 후루룩 읽었고 10권을 읽은 아이는

 “선생님. ‘방과후’도 한자예요? 그거 어떻게 써요?”

 하며 국어사전까지 찾아보며 읽은 아이니 읽은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양을 읽은 아이는 성취감을 맛보니 좋고 깊게 읽은 아이는 한 구절 한 구절을 마음 속에 익혔으니 좋다. 나의 취향에 따라 후루룩과 한 줄 한 줄을 병행하여 50권을 다 끝내고 나니 개운하고 좋다. 실은 읽기 싫은 몇 권을 그만 둘까 하다가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아이들에게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 읽었다.  동화건 무엇이건 어른들도 늘 책을 읽는 것이라는 생각을 아이들이 갖게 되었다면 그것으로도 교육적 성과는 충분하리라 본다.

 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도전! 초등 베스트 문고 50’이 아니더라도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가끔 책을 잡고 뒹굴뒹굴 하다보면 내 팔자가 정자 그늘에 앉아 노니는 한량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생업을 위해 책 읽을 시간은커녕  눈코 뜰 새도 없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의 일상을 부채나 접었다 폈다 하는 한량에 비유 할 수 있는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책읽기가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에게 밝혀 두어야 함을 느낀다.

 왜 책을 읽는가?

 그것은 재미있기 때문이다. 식도락가가 음식이 맛이 있어 먹듯이 책이 재미있어 읽는다. 산악인이 ‘거기에 산이 있어 오른다.’는 것처럼 책이 읽어 읽는다. 여행가가 세상을  주유(周游)하듯 책 속의 세상을 유람한다.  그 유람은 나의 눈을 즐겁게 하진 않지만 나의 뇌를 즐겁게 한다. 특히 감각과 상상을 주관하는 우뇌를 즐겁게 한다.

 가끔은 재미있지 않은 책을 오기로 읽기도 한다. 미식가가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해보자.’하며(식객의 글쓴이 허영만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복어 알을 먹듯 책을 붙들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식으로 읽는다. 세계 최고봉보다 더 높이서 휘날리는 깃발을 보기 위해 히말라야를 오르듯 가끔 머리에 , 특히 좌뇌에 쥐가 날 것 같은 책을 오기로 읽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지적 호기심이 충만하여 읽는 책이다. 그렇게 오기로 읽는 책과도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엔 화기애애해 진다. 그 화기애애한 순간엔 나무가 아닌 숲의 모습으로 책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때론 현실적 필요에 의해 책을 읽기도 한다. 읽은 대로 바로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책들. 가슴에 묻어 둘 필요는 없고 메모지에 적으면 되는 내용인 책들.

 감동을 얻기 위해서든,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든, 저녁 식단을 짜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든 결국 모든 책읽기는 ‘인생을 풍요롭게’ 라는 의미 앞에 모인다. 책을 통해 인생을 비추어 보고 책을 통해 현자들의 가르침도 배우고, 책을 통해 생활의 지혜도 얻고.

 낱낱의 책이 모두 의미 있었지만,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아기사슴 플랙>이다. 이 작품으로 1939년에 마저리 키난 롤링즈 가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작품의  무게를 누구나 인정 하는 것임을 알겠다.

 <하늘을 나는 교실>의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작품을 거의 섭렵 한 것과 그의 독특한 머리말을 통해 현실과 허구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일도 즐거웠다. 역시 에리히 케스트너다 하는 생각을 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을 삐삐 시리즈가 아닌 <산적의 딸 로냐>를 통해 다시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책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주로 쓴 잭클린 윌슨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 중에는 <금이와 메눈취 할머니> - 우봉규 저- 가 눈에 튀었다. 이 작품 역시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다룬 내용인데, 자연친화적인 나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어서 더 좋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아기사슴 플랙>은 서부의 사나이와 황야의 무법자가 권총을 들고 말 달리며 먼지 바람을 일으킬 때, 그 뒤에는 작은 체구로 땅을 일구고  옥수수를 심고 소를 길러 소젖을 짜서 식탁에 올리던 평범한 개척지 사람들이 있었음을 사실적인 묘사와 서사로 보여주고 있다. 그 개척지 생활에서 한 소년이 느끼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씻어준 아기 사슴 한 마리와의 교감. 그 교감을 아름답게 받쳐주는 광활하고도 소박한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화 몇 점이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주인공 조디는 극단의 굶주림을 경험하고 난 뒤 한층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먹을 것에 연연하던 부모님을 굶주리는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면서 갈등이 해결되는 구조인데, ‘경험’이 얼마나 위대한 스승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겪어 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체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자연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는 말도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 두 가지. 체험과 자연.

 서울 보다는 좀 더 자연과 가까운 하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싶은 나의 꿈을 신념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아기 사슴 플랙>에서 얻는다.

 또 하나 <내 친구 윈딕시>에 작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의 희망을 아름답게 일깨워 주었다.  <내 친구 윈딕시 >는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든 떠돌이 개와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거기에 자신의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만들어 주신 작은 도서관을 지키며 소박하게 늙어가는 한 부인의 이야기는 마음을 설레게 했다. 책 속의 그 도서관을 지은 사람처럼 나는 갑부도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 도서관을 생일 선물로 받고 싶어요.’ 라고 말한 적도 없지만,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한 (실은 나의 꿈이니 나를 위한) 도서관을 마련하고자 하리 하우스를 마련한 것이니 생각만으로도 기쁨이 들떠 오른다. 너무 멋지지도 않고 너무 책이 많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하리 하우스의 작은 학교 도서관에서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를 정독하고 싶다. 가끔 아이들을 위해 책장을 멈추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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