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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삽살개와 토종 장닭

솔농원 에는 두 마리의 한우와 두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토종 닭을 키우고 있습니다. 모두 부모님이 먹이를 주지만 아버지는 무게가 나가는 소를 중점적으로 키우고 어머니께서는 삽사리와 시베리아허스키 계통의 잡종개의 먹이를 주신답니다. 그런데 솔 농원에서 키우는 동물 중에서 삽사리와 장닭은 앙숙이랍니다. 닭 쫓던 개라는 소리도 있는데 이상하게 삽사리는 토종 장닭에게 꼼짝 못 한답니다. 먹이를 닭이 뺏어 먹어도 멀뚱멀뚱 거리고, 또 닭이 개를 못 살게 굴어도 별 저항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삽사리가 좀 불쌍하기도 합니다.

근데 요 위에 장닭은 질투심도 많은 녀석 입니다. 어머님이 삽사리 밥 주면 질투가나서 어머님께 부리와 발로 공격을 하기도 한답니다. 닭장에 들어가래도 안 들어가고 아무튼, 어머님에게 모이를 얻어 먹으면서 어머니 한 테 반항하는 장닭의 심보를 알다 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이 요 녀석들을 키우는 이유를 알면 이 세상의 외할머니들이 외손자와 손자를 생각하는 깊은 사랑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어머이 힘든데 닭하고 개하고 키우지 말아! 그러면 어머님은 말씀 하신답니다. 농사 짓는 집에서 짐승은 키워야 한데이...... 왜냐하면...... 음식 남은 거로 키우면 되고...... 소 안 키우면 구정물 처리하는 것도 힘들어...... 이런저런 이유들은 진정한 농사꾼의 가슴이라면 모두 맞는 말씀 이십니다. 그래도 힘드시니깐 안키우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 이 말씀을 하시면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지윤이 지승이가 시골 외갓집이라고 오는데 소나 닭도 보고 그래야지 ......짐승이 없으면 애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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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솔직히 농사짓는 외갓집 시골이라고 왔는데 소도 닭도 개도 없이 농사 짓는 시골에 대하여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 하겠지요. 어쩌면 지윤이 외할머니는 우리 시대에 마지막으로 살아계신 농사 짓는 외갓집 할머니들의 사랑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랑을 앞으로는 대한민국 어느 시골마을 에서도 느낄 수 없는 날들이 빨리 찾아 올까 봐 솔직히 두렵습니다. 농촌에서 도시에서 앞으로 수 없이 나타날 신식 외할머니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져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하긴 신식 외할머니의 손자 사랑에 그 나름의 방식대로 신식 손자들이나 외손자들은 또 나름의 생존철학과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그러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자연 속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외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아주 오래오래 지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외할머니가 그랬고 지윤이 지승이 외할머니가 그렇게 살아 왔듯이 앞으로 나타날 신식 외할머니들도 구식 외할머니가 전수해준 농촌의 서정이 담긴 그 사랑의 가슴만은 대대로 전승해서 그 옛날 지윤이 지승이 외할머니의 손자손녀 사랑을 이 땅에서 오래오래 듣고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쿠~ 어제는 음력으로 12월 1일 내가 태어난 날이라고 어머님이 그랬습니다. 그 날도 오늘처럼 화창하고 맑은 하늘이었다고...... 그 날 처럼 맑은 날 솔농원을 바라보며 먼 훗날 지윤이 지승이 한 테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어떤 추억의 영상으로 기억 될련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포근하고 따뜻한 외할머니와 외삼촌 같은 막내 외삼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구리 하우스에서 지윤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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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본채 뒷면 전경


1975년... 새마을 운동이 절정에 이르고 수출 100억불을 외치던 시절에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 양조장 건물이 신축 되었습니다. 그 시절 고향 떠난 누나와 형아들이 서울 구로공단과 울산공단에서 티셔츠도 만들고 유조선도 만들면서 오로지 고향땅 부모님과 조국 근대화의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모두가 열심히 일하던 시대 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부의 장기집권 시도가 진행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절대 자유와 인권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앞 세운 유신헌법이라는 정치적 틀속에서 독재에 짖눌리고 살았던 암울한 시대가 1970년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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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축물이 2007년에 비교적 온전히 하리마을에 흘러간 세월만큼의 연륜과 멋을 뽐내며 실개천이 옆으로 다정 다감한 건축미를 자랑하며 마을의 중심축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텃밭 끝자락에 남쪽을 향해 직사각형 2층 건축물은 언듯 봐도 1970년대 건축물이 보여주는 낯익은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일대에도 산비탈을 따라 벽돌로 쌓고 미장으로 마감한 주택들이 들려주는 서민들의 주거건축 양식을 볼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재개발의 광풍에 정감어린 달동네의 붉은색 기와지붕과 스레이트 지붕으로 연결된 지붕 마루들이 보여주는 풍경과 그 안으로 이리저리 연결된 비탈길 골목길의 정경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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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1970년대 후반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느꼈던 집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깃든 가슴과 집을 바라보는 합리적인 건축관을 간직한 그 시대의 건축물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당시 경제적 상황과 건축기술과 건축자재의 낙후성으로 벽돌과 철근콘크리트로 조합된 단순한 외양과 내부 구조로된 평범한 건축이지만 정말 튼튼하기 그지 없는 토치카처럼 단단한 구조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1층에서 2층 지붕면을 떠받치는 벽체는 눈 짐작으로 재어봐도 30CM가 넘을 것 같았습니다. 와~! 요새구나! 프랑스가 독일 침공에 대비해서 구축 했다던 그 벙커도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벽체보다는 단단하지 않겠단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면 말 다했지요? 그래서인지 30년이 넘은 단순한 조석식 벽돌 건축물에 균열(crack)을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건물 외관만 잘 관리해 주면 앞으로도 100년 아니 그 이후의 또 한 세기를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을것 같은 집이 하리 하우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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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1층은 막걸리 만드는 작업장이고 2층은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즘 건축물로 말하자면 1970년대 봉재산업의 메카였던  구로공단자리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공장형 오피스 빌딩과 맥을 같이하는 스타일 입니다. 다른 특별한 설명으로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의 건축적 발견을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2층 살림집 후면에 있는 창문 만으로 이야기 합니다. 2층에는 용도에 따라 구획된 공간에 하나의 창문이 달려 있습니다. 모두 5개의 창문이 있는데 그 크기가 모두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 작은 창문이 있는 공간은 화장실과 욕실 입니다. 당연히 누가 볼까봐 창문을 작게 만들었고 두번째 제일 큰 창문은 안방 창문 입니다. 사람이 주로 거주하는 메인 공간의 창문을 크게 만들어 놓아 햋살과 창밖 전망을 고려한 크기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세번재는 주방 창문 입니다. 네번째 건너방 정도의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의 창문이고 마지막이 요즘으로 치자면 다용도실 용도의 공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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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에 대한 생각으로 각 창호의 크기가 용도별로 정해지고, 열 손실을 최소화 하기위한 생각으로 전체적으로 창문의 크기가 작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것이 그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건축을 바라보는 생할 건축이고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건축물로  현실과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역사성을 간직한 건축물이 하리 하우스 입니다. 지금 처럼 돈 많이 들여서 건축설계를 맡겨서 집을 짓는 일명 스타 건축가들이 만들어 내는 관념적 건축과는 구별되는 우리 시대의 건축물이라 이야기 해도 누가 아무도 뭐라고 그러지 아니 하겠지요.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창문이 있는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수리해서 살기로 했답니다. 참으로 그 집 주인은 역사와 미래에 대한 현명한 미적 감각과 건축적 안목을 가진 멋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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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에 대한 자가보수 이야기를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홈페이지 집수로 카테고리에 올릴 생각 입니다. 오늘은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가 갖는 건축적 의미와 하리하우스의 역사적 상징성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집수리 이야기를 끝내야 겠습니다. 한 마디 더하고 끝내야 겠습니다. 집은 사람이 살면서 수리하며 가꾸는 재미가 있어야 제대로 된 집입니다. 그 집을 수리 하면서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가족간에 사랑과 신뢰와 믿음이 쌓일때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진짜 좋은 집으로 자자손손 보존되며 이야기 될 수 있겠지요. 할아버지의 손길과 추억이 깃든 집, 아버지의 땀과 사랑이 깃든집, 엄마의 정성스런 손길이 깃든 집, 그런 집과 몇년 후에 오를 집값을 바라보고 사는 집... 어떤 집이 사랑스럽고 정감있는 좋은 집이란 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집에 대하여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가치는 있을 듯 합니다.

소구리 하우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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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농원 가을 1987

솔농원을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옛 추억을 노래해 보시죠? 1987년인지 86년인지 확실치 않치만 암튼 1990년 이전 솔농원 가을풍경은 틀림없는 사실 입니다. *__* 마당에 농촌형 4륜구동 자동차인 세레스가 있는 걸로 봐서는 차를 구입한 해 이거나 그 이듬해는 확실합니다. 바깥마당 봉당에 사과나무에 작고 붉고 시그운(이거 표준말이 뭐죠? 시다 인지 싄인지, 아니면 시굽다 인지, 암튼 그거 있잖아요? 임신하면 찾는 다는 그 신맛을 표현하는 낱말인데 갑자기 시급다는 표현이 사투리 같아서 하는 소립니다) 그 맛을 아시는 친구들에게는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임에는 틀림 없는 사진이겠지요?


소구리 하우스에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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