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전기와 관련된 실험을 두 가지 했습니다. 전기 전자 분야의 전문가이신 나그네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전동기 만들기와 전기 만들기 수업을 해 주셨습니다. 그 두 수업에 전기의 양을 재는 기계를 사용하였는데, 호기심 많은 지승이가 그 기계를 너무 좋아해서 나그네님께서 선물로 주셨었습니다.  기계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승이가 이것 저것에 흐르는 전기량을 측정해 보려 하면 고장 나지 않게 다루란 잔소리를 늘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 일어난 지승이가 생수병에 두개의 구멍을 뚫어놓고 실험을 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물에 있는 전기량을 측정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생수병을 흔들었다가 놓기도 하고 두 개의 생수병에 각각 구멍을 뚫어서 그 두 병에 있는 물 사이에도 전기가 흐를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물이 가만히 있을 때와 흔들어서 소용돌이 치게 했을 때 측정되는 전기량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슬그머니 딴청을 하고 있기에 생수병을 치워주고 기계는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 했습니다. 구멍 뜷린 생수병을 버릴까 하다가 다음에 또 한다면 줘야지 하고 놓아두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지승이 무엇을 알아냈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좋은 실험도구를 갖고 자유롭게 전기량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추억은 느닷없는 순간에 뛰쳐나와 가만 미소 짓게 하곤 합니다. 그 날 지승이가 실험용으로 쓴 생수병이 다른 생수병과 섞여버린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외갓집에서 물을 받다가 양 옆에서 분수처럼 솟아나는 물줄기를 보고 어이없어서 웃고 말았습니다.

 
오후엔 1층에 있는 도서실을 꾸몄습니다. 이모가 보내주신 조화바구니들을 책 사이에 옮겨놓으니 도서실이 훨신 밝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장난감 방으로 만들어 주었던 방에서 바닥에 깔았던 스티로폼을 걷어내고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게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만들어야 하는 블록 장난감들을 2층 사랑방으로 옮겨주었습니다. 장난감을 정리하다가 토머스와 기차들에 나오는 토머스 장난감을 보더니 지윤이가 말합니다.

“우리 영어 선생님 아들이 한참 토머스를 좋아할 때라고 하셨는데, 이 토머스 선생님 아들 주라고 선물로 드릴까?”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고 그 토머스를 챙겼습니다. 그런데 지윤이가 그 토머스 장난감을 갖다 드리지 않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스티커도 붙여져 있고 그런데 좋아 하실지 걱정이 되서 그런다는 겁니다. 그래서 ‘분명 좋아하실 거다, 그리고 스티커가 붙여져 있어서 더 예쁜데 맘에 걸리면 떼어서 드려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 수업이 종료된 뒤라 선생님 뵙기가 쉽지 않고 막상 드리려니 용기가 없는지 아직까지 책상위에 두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랑 우리 영어선생님이랑 생각이 같나 봐요. 영어 시험 보는 데 가림판이 필요 없다고 가리지 말고 보라고 하셨어요.”

“영어 선생님도 엄마랑 생각이 같나 봐요. 영어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말하게 되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사과하면 apple이라고 안 생각해도 사과를 보면 그냥 저절로 apple이 생각나게 해야 된데요. 집에서 영어 비디오 많이 보고 그러면 좋다고 하셨어요.”

‘시험 볼 때 친구가 내 것을 보지 못하게 가림판으로 가리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 같다. 내가 친구 시험지를 보지 않는 것처럼 친구도 내 시험지를 보지 않는다고 서로 믿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가림판 사용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 영어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고 가림판 없이 시험을 보셨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준비물에 가림판이라는 게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은 가림판을 거의 모든 선생님들께서 당연하게 사용하게 하고 계시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내 시험지를 보고 썼느니 어쨌느니 하는 시비 요인를 없앤다는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누가 내 것을 볼 지도 모른다는 ‘의심’하는 마음을 전제한 가림판이라 마음에 꺼려지던 참에 가림판 없이 시험 보라고 한 선생님이 계시다니 그 자체로 좋았습니다. 그런 선생님이라면 장난감 정리를 하다가 토머스를 좋아한다는 아기가 생각나서 드린다는 선물을 괄시할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윤이가 선물은 진심이 통하면 되는 거라는 가르침도 얻을 기회가 될 것 같아 꼭 보내드리려 합니다.

하리하우스 1층에 도서실을 꾸며놨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습기’입니다.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막으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지만, 땅이 갖고 있는 습기 자체를 막을 방법이 뚜렷하지 않아 우선은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여름에 사람이 없이 비워 둘 때 창문을 닫아두면 더 습해서 천연 재료로 된 것들엔 곰팡이가 피는 것을 막기 힘듭니다. 그래서 자바라식 방범용 문을 설치하고 사철 문을 열어둘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힘 중에 막기 어려운 것이 ‘습’ 인 것 같습니다. 물이 솟아오르는 정도는 아니지만, 강 가 마을에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바닥에서 피어나는 습한 기운. 아이들이 더 쾌적하게 놀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꼭 해결해야할 하리하우스의 과제입니다.

지윤 지승은 하리하우스 1층을 꾸미는 일에 잘 협조를 해 줍니다. 책상을 같이 들자고 하면 들고, 조화 바구니를 옮기자하면 옮기고 장난감을 정리하자면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자신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임을 알기에 더 잘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함께 꾸미는 재미가 있는 곳. 하리하우스가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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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4/12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 발견은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대한 과학자나 발명가의 상당수는 다른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재미나고 엉뚱한 생각을 통해 탄생했습니다. 지승이가 가진 작은 호기심이 지승이에게 훌륭한 아이디어와 지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원천이 될것이라 믿습니다.이번 여름엔 지난 겨울에 못했던 방음벽을 만들어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측정기구도 이미 확보했구요. 아이들에게 소리에 대한 좋은 실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지난번 하리에서 만들었던 방식대로 집에서 친환경 전지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이번엔 콜라를 사용했는데 시계가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다음엔 마그네슘(산과의 반응상태가 좋아서 전압을 크게 만들 수 있답니다)을 이용한 콜라전지를 만들어서 시계도 움직여 보고 전구에 불도 켜 봐야 겠습니다.

오늘은 꼭 엄마를 찾아 가야지 하고 별러서 하리 농협 앞에서 12시 33분 버스를 탔습니다.

올거라 믿고  기다리시는 데 못 가면 안 될 것 같아 꼭 간다는 약속은 안 드리고 갈 수도 있다는 운만 띠워놓았습니다. 친정 엄마를 방문하는 건 늘 이렇습니다. '갈 수도 있어요' 오늘 꼭 간다고 하면 외할아버지께서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오실 것이기 때문에 걸어서 가려는 계획도 어긋날 수 있어서 그냥 상황 봐서 가겠다고 말씀드려놓은 것입니다. 일부러 고생 좀 해보라고 돈 내고 해병대 교육도 보내는 데 시골길 한 시간 남짓 걷는 거야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여 걸어갈 계획을 하는 것인데 외할머니는 추운데 아이들 고생한다고 걱정을 하십니다. 버스 차비를 내려고 잔돈을 준비하느라 농협에서 팥영양갱을 하나 샀습니다. 곧은터 쯤에서 기운 떨어질 때 먹으면 될 것입니다.

버스로 12분쯤 걸려 기동 정류소에 내렸습니다. 이년 전 여름 거기서부터 솔고개까지 걸어가는데 놀며 놀며 컵라면 끓여 먹으며 갈 때는  두 시간 정도 걸렸었습니다. 오늘은 추워서 걸음이 빠를 것이니 그것 보단 빨리 갈 수 있을 겁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이동형 구르마에 짐을 매었습니다. 그리고 구르마를  지승이가 끌었습니다. 밀고 끌고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뒤쳐져 오면서도 힘들다는 애길 안합니다. 처음엔  엄마가 끌고 간다고 달라고 하여도 싫다고 하더니 한 25분 쯤 가서는 엄마에게 달랬더니 짐을 넘겨줍니다. 힘들었나보구나 생각하고 짐을 끌고 가는데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지승이가 힘들었겠구나 했습니다.
한 10분 걷다가 지윤이에게 짐을 넘겼습니다. 무거운 건 나눠들 줄 알아야 해서 지윤이에겐 곧은터 서낭당까지 의무적으로 끌고 가야한다고 책임을 주었습니다. 곧은터까지 가면 영양갱을 먹는다는 생각에 열심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날이 좋을 땐 서낭당 당산나무 그늘아래서 컵라면을 먹기도 하지만 지금은 영양갱 하나만 나눠먹으며 곧장 외갓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컵라면을 먹는 게 낭만이라 하지만 안먹을 수록 좋기 때문에 일부러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외갓집에 가서 눈썰매를 탈 생각에 빨리 가고 싶어했습니다.
곧은터에서 한 20분 걸어 앞저넘 언덕에  오르면 솔고개 마을이 한눈에 보입니다. 학강산 아래 외갓집이 따뜻하게 서있습니다. 거기서부턴 하나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솔고개는 다 외갓집 같기 때문입니다. 두시가 거의 다 되어 외갓집에서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바로 눈썰매를 타러 나갔습니다. 지난번에 눈썰매 타고 바지가 젖어서 내복바람으로 집에 갔던 걸 생각해서 스키바지에 여벌옷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지난 번 탔던 밭이 아니고 다른 밭에서 탔는데, 준비가 완벽한 만큼 오래 타라고 했는데 얼마 안타고 들어와 버립니다. 알고 보니 눈 속에 뭐 엉덩이를 찌를 만한 것들이 있는데다 지난번엔 아빠가 같이 있어줬는데 이번엔 저희끼리 타니 재미가 덜 했나 봅니다.

자고 가라는 걸 가야 한다고 했더니 갈 거면 날 밝을 때 가라고 재촉을 하십니다. 생수통에 물을 받아서 외삼촌 차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엔 기동에서 하리까지 과방재를 넘어 걸어볼 참입니다. 과방재라고도 하고 과거재라고도 하는데 덥지도 춥지도 않을 때를 골라 넘어보려 합니다. 차로 몇 분이면 될 거리를 몇 시간을  들여 걸어보는 경험이 아이들 삶에 어떤 의미로 살아날지 모르지만, 더 크면 국토횡단 같은 계획을 세울 밑거름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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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문자가 왔습니다. 서울서 보낸 택배가 오늘 도착예정이란 문자였습니다. 방학 때 마다 하리로 물품을 보내 주는 고마운 분이 계십니다. 바로 아이들 이모입니다 나와의 인연으로 아이들의 이모가 된 가짜 이모(?)들이 아니고 혈연으로 맺어진 아이들의 진짜이모. 기다렸던 택배가 도착하자 지윤이가 먼저 달려들어 포장을 뜯습니다. 분유, 김치통에 넣어 보낸 싱싱한 느타리버섯. 알이 굵은 사과 그리고 옷 봉지. 지윤이가 기대한 건 그 옷 봉지입니다. 싸고 예쁜 옷을 보고 지윤이가 생각나면 사고 지승이가 생각나면 사고, 체구 작은 동생이 생각나면 사고 가끔은 애들 아빠 옷도 사서 보냅니다. 애들 키우느라 바쁜 나를 배려해 동네 전철역까지 들어다 주고 돌아서기도 하고 가끔은 이렇게 택배로 보내줍니다. 특히 하리에 있을 때는 장보러 가기 힘든 상황을 고려하여 단호박이나 양파 사과처럼 저장성 있는 농산물이나 자장 소스 같은 공산품도 택배로 보내줍니다. 이번에는 분유를 보내주었습니다. 추울 때 따뜻하게 한잔씩 타 마시라고 보냈습니다. 진심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을 보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특히 반가운 건 거실용 슬리퍼였습니다. 슬리퍼가 다 닳아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어떻게 알고 딱 네 켤레를 보내온 겁니다. 이런 게 이심전심이겠거니 생각하니 뭉클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나서부턴 거의 언니가 사주는 옷을 입으며 성장했습니다. 아이 두을 둔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언니는 내 옷을ㄹ 사 줍니다. 많이 받아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대상. 엄마 같은 ‘언니’입니다.  잘 먹고 잘 입겠다는 고맙다는 감사의인사면 되는 친정 언니로 보터 받는 혜택.

잘 받았다는 전화를 하는 동안 잔기침을 많이 하던 언니를 위해 은행을 보내주어야겠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마음은 기쁜데, 날은 춥기만 해서 은행 밭에 나갈 엄두를 못 내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밤에 난로에 불을 피워보라고 아이들을 먼전 내려보냈습니다. 불을 저희끼리 피워보는 기회를 주려는 겁니다. 성냥은 없고 라이터는 몇 번 켜다보면 쇠 부분이 달구어져 오히려 위험하겠다 싶어 야외용 버너를 이용해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버너의 불꽃을 난로 안의 불쏘시개로 옮기기 위해 종이 막대를 사용합니다. 이면지를 연습장으로 쓰고 나면 그 종이를 세로로 서너 번 정도 접어 양 끝을 잡고 빨래 짜듯이 비틉니다. 그러면 꽈배기처럼 꼬인 종이 막대가 되는데 불꽃을 옮기기에 좋습니다. 고구마 중에서 성한 것을 골라 호일에  싸서 들고 내려갔습니다. 둘이 난로 안에 나무를 잔뜩 넣어놓고 연신 종이에 불을 붙여 넣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무 밑에서부터 불이 타 올라가게 해야 하는데, 쌓인 나뭇단 위에 불붙은 종이를 던지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러니 종이만 호로록 타 버리고 나무에는 불이 붙지 않고 있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불은 아래서 위로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난로 속의 나무들을 들추어 움집모양으로 세우고 그 사이에 불붙은 종이를 넣었습니다. 이론대로 했지만 불이 나무로 잘 옮겨 붙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번갈아가며 종이 불쏘시개를 한참 태운 후 불이 나무에 옮겨 붙었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으면서 연기가 심하게 났습니다. 난로 문을 닫으면 난로 안이 궁금해서 문을 열게 되고 문을 열면 불꽃과 연기가 확 번져나왔습니다 . 눈이 맵고 코도 맵지만 빨간 불이 널름거리는 걸 보면 ‘와!’ 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불이 완전히 살아난 다음엔 굻은 토막을 몇 개 넣었습니다. 난로는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린 고구마를 먹고 올라와 먼지 묻은 바지와 매운 내 밴 잠바를 현관에 벗어놓고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난로의 불꽃에 대한 기억이 절정에 대한 이미지로 살아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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