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에 해당되는 글 139건

  1. 2011/03/19 열엿새 째 이야기 - 성장의 시간 (1)
  2. 2011/03/17 열닷새 째 이야기- 불놀이 (3)
  3. 2011/03/15 열나흘 째 이야기-얼음낚시
 

열엿새 째 이야기 - 성장의 시간


며칠 전 지윤이 학교 일기 주제가 '엄마 아빠가 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썼나 궁금하여 지윤에게 말하고 읽어보았습니다. 아빠는 운동과 운전을 잘 하신다고 썼습니다. 엄마는 요리를 잘 하신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엄마에 대해 쓴 내용 중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엄마는 농사를 잘 지으시고 또 풀을 잘 뽑으신다는 내용입니다, 표현하기를 ‘엄마가 풀을 뽑으면 풀이 금방 후루룩 없어진다.’ 고 쓴 겁니다. 농사를 전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웃을 내용이지만, 어쨌든 딸의 눈엔 엄마가 농사를 잘 짓고 풀도 후루룩 잘 뽑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엄마가 농사를 잘 짓고 풀을 잘 뽑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지 아님 그냥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엄마가 무어든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인식된 것은 뿌듯합니다.
지윤이가 일곱 살 되던 해부터 엄마가 밭을 일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니 지윤이 밭을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럽습니다. 가끔 자기 맘대로 밭을 가꾸어도 되냐고 묻습니다. 특히 겨울이 막 가는 시절에 밭에다 뭘 심어 보겠다고 호미를 들고 나서기도 합니다. 땅 몇 번 파다말고 호미를 밭 가운데 던져두고 돌아오기 일쑤지만, 어쨌든 흙을 친근하게 느끼는 아이로 큰 건 하리하우스 덕분입니다.
 여름엔 풀 뽑는 엄마를 보고 가을엔 추수하는 엄마를 보고, 또 호두나무에서 장대로 호두를 떠는 아빠를 보고 아이들은 자연의 순환을 배우는 겁니다.  장대로 호두 떠는 일은 아빠 다음으로 지승이 잘 합니다. 엄마보다  지승이 장대를 잘 다루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아빠가 안 계실 땐 지승이 호두나무에 올라가야 하니 호두를 떨 땐 지승이 스스로 느끼는 존재감이 더 당당하지 않을까 하며 호두나무에 올라간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한번은 지윤이 숙제에 어려운 수학문제 풀기와 어렵지만 끝까지 해낸 일을 비교해서 쓰는 내용이 있었는데, 은행 줍기는 어려운 수학문제 푸는 것만큼이나 하기 싫은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겉 물렁한 껍질이 터지면 고약한 똥냄새가 나는데다, 은행껍질의 진물엔 독성이 있어서 피부에 닿으면 두드러기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하니 당연 은행 줍기는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해 보는 것도 교육이라 여기는지라 한 바구니에 500원이라는 교육비를 지불하며 시킵니다, 아이들이 500원을 벌기위해 한참을 꼬박 쪼그리고 앉아 일하는 것을 보면, 지구력도 있고 참을성도 있구나 싶어 대견한 생각이 듭니다.

새 학년이 되어 지윤이 담임선생님께서 보낸 가정통신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혹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저 사람도 성장하는 중이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문구를 읽는 순간 지윤이가 참 행복한 4학년을 보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부족함을 성장의 과정에서 보아주고 이끌어 주실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성장의 과정’

하리하우스 작은학교에서의 15박 16일을 마무리하며 ‘성장의 과정’이란 말을 떠올립니다. 작은학교 이야기는 늘 성장합니다. 부족함이 알기에 성장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작은학교에 와서 놀다 간 아이들의 인생과 함께 성장하고, 꿈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나와 함께 성장하고, 풀이 썩어 거름이 되는 밭의 역사와 함께 성장하고, 까마득한 키의 은행나무와 함께 성장하고, 하리하우스 작은학교 이야기를 응원해 주는 모든 이들의 기원과 함께 성장합니다.

계획보다 일정이 짧아져서 아쉽게 돌아간 진슬이는 여름방학을 기다릴 겁니다. 형, 오빠, 친구들과 놀던 추억을 간직한 아이들은 그리움이란 걸 배웁니다. 더불어 하는 감사함도 알 것이니 다가오는 사람 소중함도 알 겁니다.

마음이 성장하는 곳, 마음이 성장한 시간.  사색의 시간이고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용기 있는 실천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리하우스 작은학교에서 보낸 겨울방학 15박 16일은 성장의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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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3/29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리하우스의 여름철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연을 벗삼고 자연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마음의 재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지윤이와 지승이가 부럽습니다.
    하리하우스의 작은 학교는 부족함보다는 그 부족함을 채워가는 기쁨을 알게 해 주는 학교입니다. 그렇기에 기쁨과 소중함을 알게 해 주는 학교라 생각됩니다. 올해도 재미있는 과학실험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열닷새와 열엿새이야기 - 불놀이


진슬이와 함께 한 지 사흘 째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지윤 지승은 열닷새를 하리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하리 작은학교를 떠나 서울 집으로 가야 합니다. 진슬인 내일까지 3박 4일이 아쉬운 판이고 지윤, 지승은 단조롭지만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또다른 설레임이 있는 날입니다. 어쨌거나 오늘까진 최선을 다해 놀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학교에 캠프 온 보람이 있는 거니까요. 

일어나면 책 읽고 공기하고 그림 그리고 블루마블 보드게임하고  짬짬이 데크에 나가 축구하고, 한 시간씩은 수학 문제집 풀고 영어 듣기 하고 ...

그렇게 점심때를 보낸 후엔 지윤 지승은 아빠 오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엄마 몰래 아빠 귓속에 녹차아이스크림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치킨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엄마 몰래 아빠와 작당(ㅎ?ㅎ)을 해서 먹는 녹차아이스크림이나 후라이드 치킨이 아빠와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알기에 슬쩍 눈감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아빠가 좋아하는 메뉴로 정했습니다. 돼지고기 목살 구이. 그렇게 메뉴가 정해지자 지승이는 굳이 숯불구이로 먹고 싶답니다. 난롯불에 호일 깔고 구워 먹는 것 보다 숯불구이가 먹고 싶다고 끝내 우깁니다. 실은 난로에 고기 구워먹기를 아빠는 안 해봐서 아빠를 위해 난롯불에 구우려 했는데 결국 아빠가 아들의 말을 들어줍니다.  아빠와 아이들은 난로와 숯불을 피우고 나는 난로에 구울 김장김치와 들기름 비빔밥 할 준비를 챙겼습니다. 외할머니께서 해다 주신 가래떡도 꼬치에 꿰어놓았습니다. 고기 굽고 그 불에 구워먹는 가래떡. 맛도 맛이지만 재미가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숯불구이를 특히 좋아하는 건 아마도 점토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벽난로에다 소시지구이를 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패트와 매트>를 좋아했던 지윤 지승은 꼬치에 꿴 소시지를 돌려가며 구워먹는 낭만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번엔 가래떡으로 그 낭만을 즐겨보려 합니다.

구워주기 바쁘게 홀딱홀딱 없어지는 고기. 그 재미에 아빤 열심히 굽습니다. 압력솥에서 막 지어낸 따끈따끈한 밥을 들기름과 소금을 넣고 비비는 것이 들기름 비빔밥입니다. 그게 뭐 별 맛이 있을까 싶지만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펴서 내밉니다. 최고라구요. 우리 아이들에게 밥의 소중함을 얘기 할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금방 한 밥은 밥만 먹어도 맛있어.’ 그런데 금방 한 밥인데다 외할머니께서 농사지은 들깨로 직접 짠 들기름을 넣고 비빈 밥이니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화려하게 차려진 인스턴트 밥상보다 들기름으로 비빈 밥 한 그릇이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리하우스에서 숯불구이를 먹은 후엔 들기름 비빔밥으로 마무리를 한답니다.

비빔밥과 가래떡까지 다 먹었는데도 숯불이 아직 남았습니다. 아이들이 거기에 나무젓가락이며 잔가지며 넣고 태우고 싶어 하기에 숯불구이 통을 마당으로 들어다 주었습니다. 난롯불은 뜨끈뜨끈하고 코펠에 구운 땅콩은 고소하고 아이들은 난롯가 나무를 연신 날라다 저희들끼리 불을 피우며 놀고.  연신 나무를 들고 가는 지윤에게 일부러 나무 아깝다는 잔소리를 한 번씩 했습니다. 땔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하니까요. 건성으로 하는 잔소리를 신경써 듣는 척 하며 지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소리를 번번이 하며 땔감을 갖고 갔습니다. 지윤이 나무 보급 담당이고 진슬과 지승은 불 피우는 담당인가 봅니다. 처음 나무젓가락 태우는 일로 시작한 것이 제법 커져서 멋진 캠프파이어가 됐습니다. 그러자 지윤이 달려와서 굳이 구경하러 오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엄마, 정말 멋지죠. 소원 빌어도 되겠어요!”

추위도 아랑곳 않고 노는 아이들을 두고 다시 난롯가로 돌아와 놀이가 시들해질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소원을 비는 아이들을 보고 왜 사람들은 큰 불을 보면 소원이 빌고 싶어지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사람마다 마음속에 치솟는 불 한 덩이씩 품고 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추위를 이기고 주위를 밝게 하려고 불을 피웠을 겁니다. 그리고 모여 먹고 노는 것에 흥겨워지면  그 주위를 돌며 춤추고 놀았겠지요. 그러다 보면 각자 마음에 품은 불덩이가 생각나고 그래서 그것을 말로 풀던 것이 시가 되고, 노래로 부르던 것이 음악이 되고, 불 주위를 빙빙 돌던 행위는 춤이라는 예술 형태로 발전한 것일지 모릅니다. 문득 원시종합예술이란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불장난하며 노는 것은 지치지도 않는지 결국은 아이들이 시들해 하기 전에 들어가자고 말했습니다. 네 시간을 넘게 불과 놀아도 지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불놀이는 재미있나 봅니다.

말갛게 씻은 아이들을 자리에 재웠습니다. 진슬과 지승은 학교방서 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진슬이 책을 읽겠다고 마루로 나옵니다. 읽다가 말은 <몽실 언니>를 다 읽고 자겠다 합니다. 결국 옆에서 거들며 읽었습니다. 가난했던 시대를 산 너무나도 불쌍한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진슬이가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진슬인 재미있다며 결국 다 읽고 자러 갔습니다. 진슬이 목소리로 읽어주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듣는 재미는 없었지만, 진슬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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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4/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에 하리에 갔다오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웠습니다.일상을 떠나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다는 기쁨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교차하였고, 무엇보다도 아쉬움이 컷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몇일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하리에 대한 향수로 몇일간 만만찮은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진슬이의 아쉬운 마음을 넘 잘 알것 같습니다.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많은 체험, 생각한 것을 실제 해 볼 수 있다는 자유로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다는 것들은 하리의 커다란 매력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2. 솔바람 2011/04/05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그네의 귀환! <왕의 귀환> 만큼이나 기쁩니다. 하리하우스에 나그네님도 계시고 겨울나그네님도 계시니 든든합니다. 행복한 나그네들 되시길...

  3. 나그네 2011/04/12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감사합니다.한동안 방문하지 못했지만 항상 마음은 같이 있었답니다.

 

아직도 생각납니다. 얼음낚시 하는 곳에 구경 갔다가 예닐곱 된 사내아이가 아빠가 잡아 논 빙어를 초장 찍어 먹던 일이. 어떤 맛이냐고 물으니 아이가 내 코에 대고 ‘하~’합니다. 아이 입김의 훈기와 풍겨오던 비릿한 빙어 냄새. 아이 엄마는 라면을 끓인다며 얼음 밖으로 나가고 아빠와 아이는 빙어를 잡고. 이렇게 저렇게 말을 섞고 얼음낚시 이야기도 듣고 하는데 지윤이가 자꾸 빙어에 관심을 보입니다. 먹어보고 싶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아이 아빠는 투명한 통 안에서 헤엄치는 빙어 하나를 나무젓가락으로 잡아 초장을 찍어 지윤에게 주었습니다. 호록 입에 넣고 바작바작 씹어 먹는 지윤이를 보고 으악!~ 놀랐습니다. ‘에구궁 겁도 없이  살아있는 빙어를 먹다니!’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한 중에 맛이 어떠냐고 했더니 맛있다 합니다. 지윤의 입에서도 아마 비릿한 빙어 냄새가 났을 겁니다. 크면 아빠와 지윤인 살아있는 빙어를 먹고 나와 지승인 빙어 튀김을 먹을 것 같습니다. 근데 지윤이 알까요. 빙어 입에 구더기가 한 마리 들어있을지 모른다는 걸...


그 이후로 지윤이와 지승이는 가끔 빙어낚시 이야기를 합니다. 도구도 없는 데다 빙어낚시는 인내를 갖고 시간과 추위를 견뎌야 하는데, 시간과 추위, 그  둘을 다 견디며 빙어낚시를 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빙어낚시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할만 합니다. 게다가 빙어낚시 얼음판에서 라면을 먹는 일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일입니다.
그 맛있는 라면을 생각하며  진슬이와 지윤 지승을 데리고 빙어낚시 하는 저수지에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 번 지윤 지승을 데리고 마을 옛길을 따라 가 본 그 저수지에 가서 맛있는 카레국수를 끓여먹고 오기로 했습니다. 라면도 좋지만 뜨끈뜨끈한 카레국수도 좋을 것 같아 짐을 챙겨 나섰습니다. 가는 길에 ‘소 오줌보’라는 이름의 풀씨를 따서 날렸습니다. 아이들이 씨앗주머니를 벌리자, 주머니 안에 하얗게 들어있던 ‘소 오줌보’ 씨앗은 눈처럼, 낙하산처럼 하얗게 날아갔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씨앗주머니도 땄는데,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씨앗주머니 모습이 마치 초롱불 모양이라고 하며 들고 다녔습니다. 저수지에서 타고 놀 요량으로 들고 가던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고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수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저수지에 도착해보니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서너 팀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은 중 3 되는 딸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 분이 갖고 계신 여유분 낚싯대로 아이들이 낚시를 해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30센티미터 쯤는 된다는 얼음은 전 날 사용했던 자리라도 얼음이 다시 얼어 있어 다시 얼음을 깨야 했습니다. 얼음을 깨고 구멍 안에 있는 잔 얼음들은 뜰채로 떠내야 했습니다. 구더기는 장갑을 낀 손으로 끼울 수 없어서 맨손으로 끼워주셨습니다. 얼음위의 바람은 길을 걸을 때 느끼던 바람과 달랐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아이들은 얼음낚시를 할 채비를 다 갖춰주셨는데도 낚싯대를 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애써 마련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해서 카레국수를 끓여서 대접하려 했습니다.

휴대용 가스를 아무리 흔들어도 버너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가스를 옷 속에 품었다 꺼내라고 가르쳐 주셔서 그리 했더니 겨우 불이 붙었습니다. 사방서 겨울바람 불어오는 저수지 위에서 라면을 끓이려면 휴대용 가스렌지를 넣을 만한 박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아이들 셋과 내가 웅크리고 앉아 바람을 막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워낙 추우니까 열이 냄비로 전달되지 못하고 흩어져서 한 참을 기다렸는데도 냄비 안의 물은 미지근해 지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갖고 간 냄비가 삼중바닥 냄비라 열이 금방 전해지지 않아서 물을 데우는 데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음엔 넉넉한 크기의 양은냄비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은 안 끓고 발은 시리고, 배는 고프고. 아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었습니다. 두시가 넘은 시간이라 배가 고픈데다 추위를 이기느라 열량을 다 소비했는지 지승이는 입술을 덜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순간 빨리  판단하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카레국수를 끓여서 먹이면 추위를 이길까 아님 빨리 짐을 싸서 집으로 가는 게 현명한걸까. 막 냄비 바닥에 거품 생기기 시작한 걸 과감히 버리고 짐을 챙겼습니다. 진슬이와 지윤이에게 지승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빨리 집에 가는 게 더 낫겠다고 했더니 따랐습니다. 카레국수 대접은커녕 감사하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얼음판위를 떠났습니다. 아저씨께서 내년에 쓰라며 낚싯대 하나를 돌돌 말아주셨습니다. 저수지 얼음판에서 나와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걸어서 열이 좀 나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지승이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내 긴 잠바를 벗어주었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지승이가 사양도 하지 않고 벗어주는 잠바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잠바 길이가 발끝까지 닿는지라 빨리 걸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승이에게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손을 위로 하면 길이를 짧게 할 수 있어서 걷기에 편할 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잠바를 벗은 터라 나도 추웠으므로 빨리 움직여야 했습니다. 놀며 놀며 한 50분 걸려 갔던 길을 25분 정도에 되돌아 왔습니다. 내리막이라 속도가 붙는데다 빨리 움직여야 열이 나서 안 춥다는 말에 모두  뛰듯이 걸은 결과입니다. 지승이도 빨리 걸어서 체온을 회복하자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떡집에서 막 만든 따끈한 가래떡을 한 상자 들고 오셨습니다. 아이들 주라고 맞추신 겁니다. 아이들은 카레국수가 끓기 전 길죽한 가래떡 한 줄 씩을 조청 찍어  먹어치웠습니다. 그래도 카레국수 먹을 자리가 있다 해서 끓여 맛있게 먹었습니다.

몸이 얼었었기 때문에 오후엔 집안에서 따뜻하게 있어야 감기에 안 걸린다고 했더니 모두 잘 따랐습니다. 대신 황토방에서 진슬인 지윤이와 지승이에게 드럼 리듬을 가르치고, 지윤지승은 진슬에게 사물 리듬을 가르치며 놀았습니다. 서로 배운 것을 연주해주면 저녁에 맛있는 소시지구이를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드럼과 북의 리듬을 교환하며 오후 해를 보냈습니다.

밤에 1층에 난로를 피우고 소시지와 어묵을 꼬치에 꿰어 구워먹었습니다. 땅콩도 구워서 먹으며 노래를 부르고 놀았습니다. 여름엔 이렇게 노래 부르고 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졸리고 치칠 때 까지 뛰어다니다 잠자리에 들어서야 한가하니까요. 상대적으로 겨울엔 모여앉아 얘기하고 노래 부르고 놀 일이 많습니다. 해도 일찍 지는데다 야외 활동량도 줄어서 말하고 책 읽는 데 에너지를 쏟을 여유가 생기는 까닭입니다. 겨울방학에 공기를 배워가는 게 진슬이 목표인데 하는 말,

“이모, 저 1탄 깼어요!”

게임에 익숙하다 보니  ‘공기 한 알 성공했어요.’ 하는 게 아니라 ‘깼다’는 표현을 쓰는 게 더 자연스런 겁니다. 진슬이나 우리 아이들이 게임에 익숙하다기 보단 아이들 사회에서 깼다는 표현이 더 실감나게 된 사회가 됐다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나 봅니다. 음치라던 진슬이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겁니다. 음정 박자 맞춰가며 자신 있게 큰소리로. 그런데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하는 노래 한 곡만 부르고 더 시켜도 안 부르는 겁니다. 자기는 이 노래만 배웠다면서. 연습을 많이 해서 자신이 있는 곡은 부르는 데 다른 곡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연습을 많이 하면 연습 한 내용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죽어라 공부연습을 시키나봅니다. 자신감 생기라고. 책상머리에 앉혀놓고 죽어라 공부연습 시키는 마음을 이해 할 만 합니다. 지승이도 성악을 배우기 전에는 통 노래를 안했습니다. 성악을 배우고 ‘난 성악을 배웠다. 그래서 노래를 잘 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는지 지금은 노래를 시키면 잘 합니다. 연습해 놓은 것에 대한 자신감이 지승이를 노래하게 한 것 같습니다.

진슬이와 지승이 지윤이가 얼음판 위에서 춥고 배고픈 걸 견뎌냈던 기억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자신감으로 살아나길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진슬이와 함께한 둘째 날도  진슬이가 읽어주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들으며 평온한 잠을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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